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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견 x 태껸 읽어주는 남자 : 택견의 역사 #1

2017.9.18 / 0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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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껸이 언제 어디서 발생되어 지금까지 우리에게 전해졌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여타 다른민족이 가진 각 민족의 무술(무예, 무도)와 같이 오랜시간 함께 해 온 것으로 보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다.

우리가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부분은 故송덕기 스승님이 태껸이라는 기예를 익히며 지녀왔다는 것과 그의 스승 임호라는 분으로부터 전해받았다는 사실이다. 그 외에는 함께 배운 동문이 10여명 정도가 있었다는 것을 그의 증언을 통해 알 수 있다.

 

택견과 관련된 기록의 역사

조선왕조 정조시대(1776~1800)에 이만영에 의해 저술된 재물보 "수박(手搏)은 변(卞)이라고 하고 각력(角力, 힘겨루기, 씨름)은 무(武)라고 하는데 지금에는 이것을 탁견이라 한다."라는 부분이 등장한다.

 

여기에서 수박의 변이라 함은 방법을 뜻하고, 각력은 발길질이 아닌 뿔을 뜻하는 각으로 힘을 겨루는 것을 뜻한다. 이 둘을 함쳐 탁견이라 명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고려사에 등장했던 무술의 종류(또는 무술)로 지칭된 "수박"의 연관성에 대해 여러 의견이 나뉘는데, 택견계에서는 수박이 조선에 들어 "태껸"으로 변모한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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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운틴TV에서 한국의 무예 택견: 재물보 소개 화면 중 일부

 

반대로 송도수박 쪽에서는 이에 대해 수박과 택견의 연관성은 없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한 것은 수박은 수박희가 탁견(택견,태껸)은 탁견희라고 하여 발을 주로 사용하고 수박은 전신을 쓴다는 지론인데, 작성자 개인적인 견해로는 현대 택견(스포츠경기화를 염두해두고 정리된 신한승 선생의 영향을 받은)의 모습만 보고 고대 수박과 비교하는 오류가 있다 생각한다.

 

현대 택견과 비슷하게 남은 기예로는 까기와 발차락(제주)이 있으며, 기예의 형태가 확인되지 않고 남아있는 것은 평양의 날파람 등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에 전해진 태껸 x 택견

현대에 우리가 알 수 있는 택견의 모습은 구한말 택견의 모습을 온전하게 보전한 송덕기 스승님의 모습과 그의 기술들이다. 

그 배경에 대한 이야기들을 종합하면 주로 택견은 당시 한양(지금 서울의 사대문 안과 밖)에서 성행하여 전승되었으며, 주로 중인 이상의 계층으로 한량들과 선비들이 주로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송덕기 스승님 말씀으로는 "남의 집 종살이나, 농사짓는 사람들은 택견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 없어 배우기 힘들다." 라는 이야기를 하셨다고 한다.

 

일부 단체에서 과거 택견이 민중들이 하였으며 과거 차전놀이나, 편싸움, 투석과 같은 민속놀이(라고 하기엔 과격한)을 전쟁의 일환으로 장려했다라는 의견들이 있지만, 택견과는 관련없는 추측들로 민중들이라고 하기보다 윗 단락에 언급한 계층들이 주로 했다.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연구로 입증이 필요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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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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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에서 태껸을 연구하고 알리는 구큰타라고 합니다. 개인적인 기록이나 의견을 이곳에 정리합니다. 일상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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