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수성이 풍부해진건지…

그 여름 날의 예대 옥상
2009년 10월 10일
풍운이 놀러왔다
2009년 10월 11일
Show all
난 어릴 때 아주 지랄맞은 아이였다.

요즘 시대에 자랐다면 ‘우리아이가 달라졌어요’에도 좀 심한편의 아이.

말로 표현을 못하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폭력을 자주 일삼고 신경질적인 아이였다.
기질적인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믿지만.. 성격은 점점 살면서 변했지만
경계심이 심하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성향은 ‘아빠’라는 존재가 되기 전까지 변하지는 않았다.


21살때 성대 율전캠퍼스에서

대학와서 용인대내에서도 운동도 잘하고 남자들도 좀 따라서, 성향은 좀처럼 변하지 않았다.
정말 친한 사람아니면 건방지고 까칠하게 굴었다.
사진을봐도 꽤 표정에 경계심이 묻어나온다. 이땐 사진 찍기도 싫어해서 사진도 몇 개 없다.

내 성격은 다친 전후로 나뉘는 듯하다. 다치고 1년 반동안 누워있으면서 책을 읽고, 예전에 연애를 했던…
아이엄마가 찾아왔다. 우린 꽤 오래 알고 지냈다.
다시 다치고 볼 품없어진 나에게 그녀가 찾아오고 난 여러가지 이야기, 책 등으로 함께 시간을 보냈다.
나와 그녀는 외관상 스펙은 상극이었다. 좋은 학벌, 외모, 키, 누구에게나 호감가는 그런.

한가지 문제는 아이엄마는 지병이 있었는데 노력해도 서로 너무 힘들었다. 결국 좋지 않게 끝났다.
이 부분은 체력이 좋은 내가 거의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다고 생각하는데 정성이나 금전이나.
서로에게 너무 힘든 상처만 되었다.

한동안 아버지와의 불화도 한 몫해서, 학교에 아이를 메고 다녔다. 꽤 유명인사가 되었다…
유년시절 어머니를 잃은 후로 아버지와는 항상 거리가 있었다.
수근거리는 소리, 몸은 몸대로 망가져도 날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당시에 동아리 방에서

매일 2-3시간 자면서 오기로 버텼던 생활..

어느날 아버지가 나에게 먼져 손을 내밀었다.
경계심으로 똘똘 뭉치고 고집세고 그랬던 난 그 한순간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정말 태어나서 지랄하면서 울던 꼬마때 와는 다르게 정말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엉엉 울었다.

울면서 아기였던 아들녀석이 듣고 울까봐 소리도 틀어막으면서 계속 울었다.
아버지는 10년을 혼자 살다 재혼을 하시고, 새어머니께서 봐주기로 했다.

고마움, 미안함, 내 자신에 대한 원망, 그녀 생각 복잡하게 머릿속에 엉기면서 눈이 녹았다.

그 후 어느 순간부터인지 어떤 상황에도 화를 내지 않게된 나를 발견했다.
중고교시절부터 계속 쳐오던 일련의 사건들, 근신, 정학, 퇴학, 방황 철없고 객기로 넘쳤던 경험들이 이후에 승화한 느낌이랄까.

그뒤로 한가지 더 발견한 문제 점은 다큐나 드라마, 영화를 볼 때 감정이입이 너무 잘된다는 것이다.
마치 내일인 것처럼 눈물을 흘리고, 가슴으로 전달되는 느낌…

‘아빠’가 된건지…
여튼 요즘은 아들녀석이 왠만한 말은 할 정도가 되서 전화통화를 한다.

“아빠 아빠” 소리치면서 웃는 목소리만 들어도 눈이 글썽글썽해진다.
그리고 통화후에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그녀 생각에 한숨과 긴생각 잠기고 담배로 보낸다.


이런 표정이 더 많아졌다는 것.

요즘 더욱 강렬하게 기억이 되 살아나고, 전화통화 한번하니 더 간절하다.
항상 결심하는건 빨리 졸업하고 내가 자리 잡는 것…
Yang Hee Eun “About the loneliness called love”

구큰타
구큰타
옛 웃대에 거주하면서 태껸 연구랑 위대태껸연구센터 운영

답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